오늘 4월 19일이다.
50년 전 오늘 4.19 혁명이 일어났다.
직접적인 발단은 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이다.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부정선거였다.
대통령 후보 이승만에게는 이미 경쟁자가 없었다. 진보당 조봉암 박사는 이미 59년에 사형당했으며, 민주당 조병욱 박사는 선거기간 중 심장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부정선거의 내용 간단히 두가지만 들자면,
투표소에서는 3명, 6명 등으로 조직된 조의 조장이 조원의 투표용지를 확인한 후 토표함에 넣었다. 비밀투표의 원칙을 버린 것이다.
경남 마산의 한 투표소에는 아침 7시 투표함의 4할이 이미 자유당 표로 채워져 있는 것을 민주당 간부들이 확인하기도 하였다.
마산은 대표적인 야당 성향 지역이었고, 그러기에 부정 선거가 다른 지역보다 더 심했다.
그날 마산시민 1만여명이 모여 "부정선거 다시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개표장 앞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고,
실탄사격을 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4월 11일 바다에서 시체가 떠 올랐다. 최루탄이 눈에 박혀 죽은 김주열 군이었다.
이에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대된다. 시위는 4월 19일을 기해 각 대학교에서 총궐기했고, 경찰은 무차별 발포한다.
대도시에는 계엄령이 떨어졌다.
4월 25일. 전국 대학 교수단 시국선언이 발표된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골자로 하였다.
그날 밤 매카너기 미국 대사가 이승만에 찾아가 설득한다.
4월 26일. 이승만은 대통령 하야 발표한다.
4월 28일. 이기붕 부통령 일가 자살한다.
(그의 장남 이강석이 아버지 이기붕을 비롯해 어머니,남동생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총으로 쏴 자살해버린 것이다.)
4.19 혁명 동안, 기록상으로 학생 185명이 숨지고, 348명이 다쳤다.
4.19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대통령 퇴진을 이루어낸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그렇지만, 4.19의 희생을 토대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 역시 당시 권력에서 배제되었을 뿐, 오히려 더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그래서 미완의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사람들은 민주당에 실망했다.
그러다 5.16이 터지고, 박정희 / 전두환 의 군부 시대가 온다.
그렇게 우리는...
80년 5.18 민주화 운동, 87년 6월 항쟁과 같은 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했다.
4월, 5월, 6월은 정말,
학생들...학교들... 축제같은 거 하지 맙시다....
모든 민주화 운동의 시작은 결국 학생들로부터 였다는 것을...
그런 것 알려주고 배웁시다...
공유하기 버튼
| Tweet |



덧글